뉴뉴의 성장일기/2017

[35개월아기 하동/남해여행] 17.11.04 구례 가볼만한 곳 운조루 고택 산림욕장

Summer Sunshine 2017. 11. 13. 11:08

들녘밥상에서 맛잇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바로 뒤에 있는 운조루 산림욕장을 구경왔다.


운조루 산림욕장

위치 :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103




지도를 보니 꽤나 커보이는 운조루.


운조루 정문 뒤로는 연못이 있는데

물고기도 헤엄치는 걸 보니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인가보다 :-)

운조루에 대한 설명.

조선 중기의 집으로 영조 52년(1776)에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가 지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은 산과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어 ‘금환락지(金環落地)’라 하는 명당자리로 불려왔다. 

집의 구성은 총 55칸의 목조기와집으로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T자형으로 누마루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에는 큰 부엌이 없는데 이곳에는 안채 통로까지 겸한 큰 부엌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사랑채와 직각을 이룬 누마루가 있어 전체 살림을 한눈에 관찰하도록 되어있어 특이하다.

안채는 사랑채의 오른쪽에 있는 건물로 사랑채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크며 평면이 트인 'ㅁ'자형이다. 중심부분은 대청이며, 좌우로는 큰방과 작은방이 자리잡고 있다.

행랑채는 '一'자형으로 2칸이 앞쪽으로 튀어나와 누형식을 취하고 있다. 1칸은 방이고 다른 1칸은 다락으로 되어있다. 누각아래 기둥 서쪽에는 안채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층계로 하지 않고 경사진 길로 만들어 특이하다.

사당은 안채 동북쪽에 있는 건물로 따로 담장을 둘렀으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운조루는 조선시대 양반집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건물로 호남지방에서는 보기드문 예이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살림살이와 청주성의 지도, 그리고 상당산성의 지도 등의 유물도 상당수 보존되어 있다.

운조루 입장료

어른 - 천원

운조루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양반집안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솟을대문이 있다. 

대문의 홍살에는 주술적인 민속신앙으로 말머리의 뼈가 걸려 있다.

행랑을 지나면 좌측 정면에 편평한 사랑마당이 전개되고 그 건너에는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다. 

사랑마당에는 이 집을 지은 유이주가 중국에 다녀오면서 선물로 받아 심었다는 위석류라는 희귀한 나무가 있다.

그 외에 회양목 등 귀한 나무들이 집을 지을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자연석의 높은 기단은 양반가의 지위를 상징하기 위함이다.

마루에 사용된 목재는 이음새가 없는 긴 부재를 사용하고 있다.

 이 목재는 지리산속의 때 묻지 않고 울창한 숲에서 채취한 것으로 주인의 성품과 권위를 상징한다고 함.


운조루(雲鳥樓)라는 이름은 중국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에서 따온 싯구절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서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의 ‘운’과 ‘조’를 취하여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완연한 가을색을 드러내는 운조루.

강천산만해도 바람불고 제법 쌀쌀한 날씨였는데, 운조루는 햇볕이 들어 따듯했다.

집안에 우물도 있다.

나무뚜껑을 밀어 우물안을 들여다보니 꽤나 깊은 우물의 깊이.

물이 있고 습해 안에서 식물도 자라고 있었다.

사랑채와 연결된 아궁이.

담장옆에 심어진 나무들에 하얗게 꽃이 폈다.

사랑채를 지나 중문을 열고 들어가면 중문간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사랑방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있고, 쌀통과 쌀뒤주 볼 수 있다. 

쌀통은 나무 속을 송두리째 파서 만들어 당시 부유했던 사대부가의 경제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쌀뒤주를 중문간에 둔 이유는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쌀을 나누어주기 위한 것인데 이를 타인능해라고 하나보다.

나무로 된 뒤주와 쌀독.

뒤주옆엔 가마도 있었는데, 

옛날엔 이집 안채 사람들이 타고다녔겠지.


여자들이  생활하던  안채로 넘어왔다



수많은 장독대들.


안방마님이 쓰던 보료세트가 있다.

현재 운조루에서 후손분들이 생활하고 계신 것 같던데, 그분의 침구류 인듯 보인다.

안채에서 사랑채로 나왔다.

사랑채 건너편에는 식솔들이 거주하던 것 처럼 보이는 방들이 있다.


나오는 길에 운이 좋게도 집주인 할머님을 만나 사랑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문지방이 높은 이유는 날아오는 화살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시고,

운조루 고택에 직접 사시는 분의 설명을 들으며 구경하니 더 흥미로웠다 :)

저번에 구례 왔을때는 최참판댁 마을에만 들렸는데,

구례에 오면 운조루 고택에 들려 조선시대 양반집은 이랬구나 하며 구경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